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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및 본관의 유래

댄스사랑 2008. 12. 16. 02:34


,·´″°³о♡ 최씨향기를 찾아서 ♡。,·´″°³о

시조및본관의유래
우리나라 성씨 가운데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씨족의 하나인 최씨는 역사상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한 전통있는 명문거족으로 오랜 역사의 흐름과 체험속에서 많은 특성을 남겼으며 역사상 선현들이 이룩해 놓은 찬란한 업적에서 더듬어 볼 수 있는 최씨 특유의 기개·강기·신념·절조 등으로 [최고집] 혹은 [최씨 앉은 자리 풀도 안난다.]등 많은 애칭을 낳기도 하였다. 최씨의 원조는 신라 건국의 전신인 사로의 육촌중의 돌산고허촌 사량부 촌장 소벌도리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기원전 57년경 조선의 유민들이 여러 산골짜기에 흩어져 살면서 여섯 마을을 이루고 있었는데 신라 3대 유리왕 9년 봄 6부를 개정하고 알천양산촌장 알평에게는 이씨, 돌산고허촌장 소벌도리에게는 최씨, 무산대수촌장 구례마에게는 손씨, 취산진지촌장 지백호에게는 정씨, 금산가리촌장 기타에게는 배씨, 명활산고야촌장 호진에게는 설씨의 성을 내려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삼국유사에는 위의 6부 촌장들이 모두 하늘에서 내려온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시조는 소벌도리의 24세손이며 신라 말기의 대 문장가인 최치원을 주축으로 하여 선대 및 후대에서 분파되었다고 보면 정확하다. 문헌에 의하면 최씨는 387본 까지 기록하고 있는데 거의가 지명이고 실제 시조가 분명하게 확인된 것은 43본이다. [경주최씨상계세보]의 기록으로는 소벌도리 24세손 최치원의 윗대에서 분파된 본관으로 개성, 삭녕, 동주, 전주가 있고 최치원의 후대에서는 함양, 청주, 영흥, 충주, 용강, 수원, 부안, 강릉, 강화, 화순, 통천,양천, 원주, 해주, 진주, 탐진, 전주가 분파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거의 모든 최씨가 소벌도리의 후손으로 경주최씨를 원조로 하여 소벌도리와 최치원을 잇는 후예임은 틀림이 없다고 본다. 이렇게 신라 시대에 웅기한 최씨는 신라에서 최치원, 최승우, 최언위등 세 사람이 똑같이 당나라에 유학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그 명성을 날림으로써 1대3최라 불리웠으며 특히 문창후 최치원과 같은 대문장가는 우리나라는 물론 동양의 어느 역사 속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명현으로 그가 남긴 도학과 문장은 동양최고의 지성이고 한문학의 조종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고려 때 와서는 역사상 최고의 번영을 누렸다. 고려사를 보면 수많은 최씨들이 역사를 수놓았으며 서기 1196년(명종 26)~1258년(고종 45)까지 60여 년 간 군벌정치로 한때 최씨왕국을 방불커 했다. 충절의 명장 최영은 수많은 국내외 침입과 반란이 있을 때마다 격퇴, 평정하여 고려의 시련을 극복하고 나라에 공헌했으며, 죽음에 임했어도 끝까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충절은 우리 민족의 얼이요, 최씨의 특성이다. 그외 고려 때 문신 최유청, 최윤의, 최유엄, 최재, 최항, 최충 등이 유명했으며 무신으로는 최충헌이 있다. 조선 때 와서 명신 최명길, 양명학의 대가 최석정, 학자 처ㅣ수성, 문신 최응현, 최항, 최만리, 최익현, 동학의 창시자 최재우, 신문학 운동과 국학의 개척자 최남선, 항일투사 최재형, 동학의 제2교주 최시형 등 많은 최씨들이 역사의 흐름 속에서 국가에 공헌했다. 한 민족의 가문을 가늠하는데는 흔히 문과 급제자 수를 따지고 명문의 척도를 정치적 세력의 성장과 관련시키는 관료적인 조선사회에서 당시 과거제도가 권세가의 농락을 받은 일이 많아 견식과 인격을 겸비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최씨들에게는 벼슬이 그다지 중요시 되지 않았으므로 신라와 고려에서 명성을 날린 최씨가 조선 때 와서 의외로 벼슬에 나가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경주시 교동에 자리한 [최부자집]은 12대 만석과 10대 진사로 유명하여 문공부가 1969년에 [신라의 집]으로 선정하고 길이 보존하기로 했다. 조선 때 명종, 선조, 인조 임금은 "선현 문창후 최치원은 우리 동방의 이학시조이니 그의 자손은 귀천이나 적서를 막론하고 비록 먼 시골에 사는 사람까지라도 대대로 군역에 동원하지 마라"고 전교 하였으며, 정종은 "태강의 예에 넣지 말고 범하는 수령은 처벌하라"고 전교하였다. 이렇게 신라에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국난의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최씨들이 등장하여 나라에 공헌하였으며 구국의 대열에 앞장섰던 항일투사와 의병 및 근대사회 발전에 공헌한 많은 최씨들의 거룩한 발자취는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명문인 최씨 가문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 (경제기획원 인구조사에 의거 최씨는 전체인구의 4.8%로 총 249개 성씨중 제 4 위)이다.

첨부파일 [나훈아]최진사댁셋째딸.w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