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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강산에 새겨진 추악한 문신

댄스사랑 2009. 6. 1. 21:33
유달산 정상에 있는 일본 불상들
일본 밀교 불상들 버젓이…“금수강산에 새겨진 추악한 문신”
미디어다음 / 글, 사진 = 고양의 프리랜서 기자 catartist@hanmail.net&CC=&BCC=" target=new>
목포시 죽교동에 위치한 유달산은 높이 228m의 아담한 산이지만, 목포 시내와 그 주위를 둘러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기암괴석이 아기자기하게 분포돼 ‘목포 8경’으로 손꼽히는 명소다.

그런데 이 유달산 정상쯤에 오르면 전망대 난간 너머 일등바위에 새겨진 왜색 짙은 암각화가 눈에 띈다. 일본 밀교의 불상 중 하나인 부동명왕(不動明王)과 일본 승려인 홍법대사(弘法大師)를 묘사한 암각화다.

유달산 정상쯤에 오르면 일등바위 아랫부분에 새겨진 두 폭의 일본식 암각화가 한눈에 들어온다.

일반인들은 가까이 가기도 힘겨운 가파른 바위 한가운데 자리 잡은 저 불상은 언제부터, 무슨 연유로 저곳에 새겨진 것일까? 인자하고 넉넉한 미소를 띤 한국 불상과 달리 음산한 느낌마저 풍기는 이 그림의 이면에는 일제 강점기의 치욕이 숨어있다.

목포는 1897년 자주적 개항과 더불어 근대화의 길을 걸었던 항구도시 중 하나다. 그러나 1906년 일본이 각국 거류지를 관리하는 권한을 박탈하면서 목포 시내 곳곳에는 일본 강점기의 자취가 남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그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으로 1900년 건축돼 현재 목포문화원 건물로 쓰이는 구 일본영사관을 비롯해, 구 동양척식회사 건물, 일본식 조경으로 유명한 이훈동 정원 등을 들 수 있다.

일본식으로 오른쪽부터 읽게 새긴 ‘부동명왕(不動明王)’ 네 글자가 선명하다. 화염 형상의 얕은 부조에 둘러싸인 왼편 불상은 대일여래가 악마를 항복시키기 위해 분노한 모습으로 나타난 형상이다. 오른편으로 조그맣게 보이는 것은 홍법대사상이다.

오른손에 항마(降魔)검을 지니고 왼손에는 쇠줄을 쥔 전형적인 부동명왕의 도상이다. 유달산 정상에 일본 밀교의 불상이 버티고 서서 매일같이 목포 시내를 내려다보는 셈이다.

일본 불교 진언종(眞言宗)의 시조로 숭앙된다는 홍법대사상. 부동명왕상과 더불어 일본 관광객들이 종종 들러 참배하고 가는 곳이라 한다.

그리고 유달산의 수난 역시 1920년대를 전후해 시작되었다. 유달산의 정수리에 해당하는 중요한 부분에 일본 불교의 도상이 깊게 각인된 것이다. 1997년 9월 30일 목포 시민단체인 ‘미래를여는공동체’가 목포 개항 100주년을 맞이해 유달산에 세운 표지판에 따르면 이 도상들의 내력을 잘 알 수 있다.

“홍법대사, 부동명왕은 우리 지방의 전통문화나 우리나라 불교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외래문물의 표상이다. 일본 승려 홍법(空海 774-835)은 일본 불교 진언종(眞言宗)의 개조(開祖)이며, 부동명왕은 대일여래의 사자로서 밀교의 5대 명왕 중 하나이다. 일본 불교는 개항 후 7개 종파가 목포 지역에 침투하였으며, 진언종파는 1920년 경 유달산에 홍법대사상과 부동명왕상을 조각하고 일본 불교를 우리 지역에 전파하고자 했다.”

한편, 한·일 과거사 청산을 통한 역사 바로 세우기를 표방하며 《일제협력단체사전》을 발간해 제19회 단재상 수상 단체로 선정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임헌영(65) 소장은 유달산 암각화에 대해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저주와 재앙, 분열과 파멸을 초래하도록 장치한 야만적 악행의 한 행태”라며, “마치 삼천리금수강산의 아름다운 육신에 새겨진 추악하고 끔찍한 문신을 보는 것 같다”고 분개해 마지않았다.

“광복 60년이 지나도록 일제 침략의 야욕과 수난의 치욕이 남긴 생채기를 치유하지 못한 걸 반성해야 한다”는 임 소장의 말처럼 한국 내에서 일제 강점기의 흔적을 말끔히 떨어내는 작업이야말로 과거사 청산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우리 주변에 무심코 지나치는 일제 잔재는 없는지 새겨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