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여덟번이나 영의정을 지낸 명곡공 최석정 (문열공계)

댄스사랑 2009. 3. 20. 21:32

= 여덟번이나 영의정 지낸 명곡공 최석정 (문열공계) =

 

전주최씨 문열공계의 후손으로 조선 숙종 때 문신이며 휘는 석정(錫鼎) 호는 명곡(明谷)이다.

1646년 태어나 남구만에게서 배우고 1671년 문과에 급제하여 겸열, 봉교 등을 역임 했으며 1685년 부제학으로 등용되고 한 때 파직되었다가 1687년 선기옥형(璇璣玉衡)을 수리하는 데 참여한 후 이조판서 등을 지내고 1697년 우의정으로 주청사가 되어 청나라(淸)에 다녀왔다.

1699년 좌의정에 올라 대제학(大提學)을 겸임하여 국조보감의 편찬과 여지승람의 증보를 주청하고 이를 실현 시켰다.

1701년 영의정이 되어 희빈장씨의 처형을 반대하여 진천으로 귀양을 갔다. 1702년에 귀양에서 풀려나 판중추부사를 거쳐 영의정 되고 노론과 소론의 당쟁 속에서 소론의 영수로 많은 파란을 겪으면서 전후 모두 합하여 여덟 번 영의정을 지냈다.

1715년에 돌아가시니 시호(諡號)는 문정공(文貞公)이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나고 정제두와 함께 양명학을 발전 시켰으며 경세정운도설을 저술했다. 저서로서 명곡집(明谷集), 좌씨집선(左氏輯選) 전록통고(典錄通考) 그리고 글씨로 영상유상운갈(領相柳尙運碣)이 있다.

해 설 :

조선 숙종(肅宗)
1661-1720. 1674년에서 1720년까지 재위했다.

남구만.
1629-1711. 조선 숙종 때 소론의 거두. 자는 설로, 호는 약천, 미제.

부제학(副提學)
조선시대 홍문관의 정3품관으로 제학 다음이며 직제학의 위로 정원은 1명이다.

선기옥형(璇璣玉衡)
혼천의(渾天儀), 조선시대 천체를 관측하던 기구.

이조(吏曹)
고려시대 6조의 하나. 문관의 선임, 공훈, 봉작 등의 일을 총괄했다. 조선시대에 고려의 제도를 이어받아 설치하고 문선사, 고훈사, 고공사 3사로 구성하고 관리의 임명, 공훈 봉작, 관원들의 성적고사 등에 관한 직무를 보았다. 관원은 판서(정2품), 참판(종2품), 참의(정3품) 각 1명, 정랑(정5품), 좌랑(정6품) 각 2명이 있었으며 아전으로 서리 18명이 있었다.

우의정(右議政)
조선시대 정1품관으로 의정부에 소속되어 1명이 있었다. 우상, 우정승, 우태, 우합, 우규, 단규 라고도 불렀다

청나라(淸, 後金)
만주의 여진족 건주여진(建州女眞)의 추장 누루하치(奴兒哈赤)가 세운 세계제국. 중국 대륙은 물론 몽골, 티베트, 신강(新彊), 타이완, 베트남, 미얀마, 타일랜드까지를 지배한 세계제국으로 처음에는 나라 이름을 후금이라고 했으나 2대 태종이 청으로 이름을 고쳤다. 이때부터 여진족은 만주족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중국의 표준어인 북경어(北京語)를 영어로 만다린(Mandarin)이라고 하는데 이는 중국 청나라 때 관리 즉 만주의 대인(滿大人, 만따런)을 부르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하므로 현재의 북경어에는 만주어가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청나라는 중국 최후의 제국으로 쑨원(孫文)의 신해혁명으로 297년만에 멸망했다.

좌의정(左議政)
조선시대 의정부에 소속한 정1품 관직. 좌규, 좌상, 좌정승, 좌합으로 불리기도 했다.
우의정의 위, 영의정의 아래로 백관을 통솔하고 일반 정사와 외교 등을 처리 경영했다.

대제학(大提學)
조선시대 관직. 정2품 관직으로 홍문관과 예문관에 두었다. 본인이 사퇴하지 않는 한 종신까지 재임했다

영의정(領議政)
조선시대 최고의 관직.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 임금 한사람 아래이고 모든 사람의 위라는 뜻)라고 했으며 지금의 국무총리에 해당한다. 1400년(조선 정종 2년) 도평의사사를 폐지하고 의정부를 설치하여 그 최고 관리를 영의정이라고 했다. 정일품(正一品)으로 아래의 좌의정과 우의정을 합하여 3공이라고 했다. 갑오개혁 이후에 내각총리대신으로 바뀌었다.

희빈 장씨.
?-1701. 조선 숙종의 빈. 역관 장현의 종질녀. 어머니의 정부 조사석과 동평군의 주선으로 궁녀로 들어가서 왕의 총애를 독점하여 왕자 균(조선 경종)을 낳아 이듬해 균이 원자로 책봉되자 희빈으로 승격되었다. 1690년 원자가 세자로 책봉되자 앞서 폐위된 인현왕후 민씨의 뒤를 이어 정비에 책봉되었다. 1694년 김춘택 등의 복위운동으로 민비가 복위되자 희빈으로 격하되고 1701년 죽은 민비를 궁인, 무녀 등과 함께 저주했다는 무고로 옥에 연루되어 사사되었다.

양명학(陽明學)
왕양명이 주창한 주관적 실천철학. 주희는 이(理)를 중시하고 객관적으로 봉건 질서를 합리화했는데 이에 반발하여 권위주의적인 구대의 유교에 적대하는 양명학 좌파를 탄생 시켰다. 타이완 등 중국인들에게 유교로 전해오고 있다.

 

 

 

[출처:전주최씨 복야(사도)공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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